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며
“낙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경우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낙태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법률에 따른 특수한 경우라면 의사로서 낙태시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는 지금으로부터 6년 전, 국경없는 의사회(Doctors Without Borders)의 의료인 자원봉사자 면접장에서 있었던 문답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국경없는 의사회가 무엇인지 들어봤을 것이다. 위 단체는 1991년 '유럽 인권상'과 미국 필라델피아시가 주는 '자유의 메달'을 수상하였고, 1997년에는 북한에서 구호활동을 벌인 공로로 서울특별시가 제정한 '서울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세계 각지의 분쟁·참사 지역에 신속히 들어가 구호활동을 펼침으로써 인도주의를 실현하고 일반 대중의 관심을 촉구한 공로로 199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한다.
누군가 위 국경없는 의사회라는 이름을 듣는다면, 위와 같이 자세한 수상내역은 알 수 없을지라도, 최소한 ‘아, 노벨상을 받았다지......’ 정도는 떠올릴 유명한 단체임은 분명하다. 노벨평화상이라....... 세상의 부정 보다는 정의에 가까운 일을 하는 단체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볼 일이다.
다시 면접장의 문답으로 돌아가겠다. 본 변호사가 보기에 위 Interviewee는 현행 법률상 거의 정답에 가까운 답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의 답변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런데 당시 면접관 중 한 명이 특별히 공격적이지는 않은 말투로, 위의 대답에 말을 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낙태를 하지 않는 의사와는 일을 할 수 없어요.”
실제 국경없는 의사회가 가는 곳은 강간이 너무나 흔하고 질병 등 여러 가지 사유에 의해 부득이 낙태시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임신 기간 몇 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국가기관에서 형사적 절차를 밟을 수도 없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생존을 도모하고 이들을 구호하기 위해서는 낙태를 시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어를 썩 잘하지 못했던 위 Interviewee는 결국 위 국경없는 의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했다.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는 아마 영어 실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개 의료인이 현행 법률과 정부 정책이 가이드(Guide)한 내용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재확인한 내용대로 낙태에 대한 견해를 밝힌 것이 불합격의 원인이 되었을 리는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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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인공임신중절 수술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고 하여 사회가 시끌벅적하다. 무엇 때문이지? 하며 기사들을 보다보니, 얼마 전 위와 같이 어느 한 의료인이 영어 실력이 모자라서 혹은 현행 법률에 대한 이른바 Legal Mind가 ‘잘 갖춰진’ 탓에 그 유명한 ‘국경없는 의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했던 비운의 에피소드도 떠오르고,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청와대 답변도 생각이 났다.
청와대에서는 지난 낙태죄 폐지 청원의 공식 답변으로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이 빠져 문제가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비도덕적 진료행위 유형과 처분 기준을 세분화한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안을 공포·시행했는데, 낙태시술을 비도덕적인 의료행위로 보아 '형법 제270조를 위반해 낙태하게 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을 부과한다는 것인바, 위 청와대의 입장과는 사뭇 다르게 보인다.
낙태행위는 형법상 금지되어 있지만 모자보건법상 강간 혹은 준강간, 근친상간, 유전학적 질환 등 예외 경우에는 이를 허용한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합법적인 이유로 낙태를 하려는 경우에도 시술할 수 있는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이 문제다.
특히 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 임부는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란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성폭력상담소에서 서류를 발급받아 가해자를 고소한 뒤 가해자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어야 적법하게 낙태가 가능하다. 만약 가해자가 죄를 부인한다면 조사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행법상 낙태가 가능한 기간은 임신 24주에 불과하다. 모체의 건강을 위해서는 빠르게 시술해야 할 것인데도 수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다보면 24주를 꽉 채워야 할지 모를 일이고, 그마저 이 기간을 놓치면 아예 불법이 되어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고야 만다.
안타깝게도 모체의 시계와 수사당국의 시계는 다르게 흐른다. 한 사람이 범죄행위를 했는지 여부는 신중하게 판단되어야 하지만, 모체의 건강을 위한 시술은 신속하게 행해져야 하는 것인데, 임부로서는 건강상 위험을 감수하고서 경찰의 수사를 오랜 기간 기다려야하지만, 또 잘못 기다렸다간 임신기간 24주를 넘겨버리게 되어 영영 낙태를 할 수 없게 되고 만다 할 것이다.
한편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헌법소원은 지난 2012년에 있었다(2012. 8. 23. 2010헌바402 결정 참조). 당시 헌법재판소는 합헌 4 대 위헌 4 판결을 냈지만 정족수 미달로 합헌이 결정됐다. 법정 의견은 아래와 같다.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며, 이러한 생명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하며,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그에 대한 낙태 허용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한편, 낙태를 처벌하지 않거나 형벌보다 가벼운 제재를 가하게 된다면 현재보다도 훨씬 더 낙태가 만연하게 되어 자기낙태죄 조항의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성교육과 피임법의 보편적 상용, 임부에 대한 지원 등은 불법적인 낙태를 방지할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나아가 입법자는 일정한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는 임신 24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하여( 모자보건법 제14조, 동법 시행령 제15조),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태아의 생명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위 조항을 통하여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신 초기의 낙태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 아니한 것이 임부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자기낙태죄 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
이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 다시 헌법재판소에서는 낙태죄 처벌에 관한 형법과 모자보건법상 규정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소원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여러 신문기사에서 공히 밝히기를, 정부 또한, 일련의 소란을 겪은 뒤인 2018. 8. 30. 불법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을 한 의사의 자격을 1개월 정지하기로 한 행정처분을 헌법재판소가 위 헌법소원 절차에서 위헌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보류하기로 했단다.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형법을 위반한 의료인에게 행정처분을 할지 말지에 대한 권한은 없으나 처분 시점에 대한 재량권은 가지고 있다"며 "헌재 결정 때까지 처분을 미루기로 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한편, 국경없는 의사회는 그 누구보다 그 어떤 단체보다 인간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국제민간의료구호단체라 할 것이다.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에 대한 권리, 그것은 위 단체의 사명을 실천하는 출발점일 것이다. 그들의 사명과 의식을 일개 변호사인 내가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생명권과 견주어서 굳이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우선시할 것 같지도 않다. 그들은 NGO이기 이전에 의사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위 면접장 내 면접관의 발언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인종·종교·정치적 신념 등 모든 것을 떠나 일체의 차별 없이, 생명의 구호를 최우선으로 두고 활동을 하더라도 낙태라는 행위를 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피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보편타당한 기준에 비추어, 누구라도 도저히 피할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어떠한 일을 하게 된 것을 형법상의 죄로 다스리는 것이 정당한지 생각해보게 되는바, 과연 도저히 그러지 않을 수 없어 낙태를 하기로 결정한 임부에 대하여 ‘회피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피하지 않고 부당하게’ 내린 결정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이번에 진행되고 있는 낙태죄에 관한 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차분히 기다려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도저히 피할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낙태를 하는 임부를 도와 낙태시술을 하게 된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엄한 행정처분을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도 생각해볼 것이다.
* 참조문헌: 두산백과, 아시아경제 관련 기사, 중앙일보 관련 기사, 한국일보 관련기사 외 다수.
작성: 법률사무소 윈윈 하서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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